목록글/영화를 보고 (5)
#1"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오대수의 독백이다.그러나 '스스로'와 '구원'은 한 문장에 쓰일 수 없다.전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고 후자는 신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짐승'인 노루와 새는 두 개념을 인지할 수 없다.이상한 문장이다. #2영문도 모른 채 오대수는 제약된 공간으로 피투(彼投)된다.그곳에서 그는 복수 그 자체인 '몬스터'가 된다.오로지 복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세상 밖으로 나와도 변함없다.복수라는 본질이 오대수라는 실존에 앞서있다.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대수는 고통 속에 몸부림친다.결국 자신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인정한다."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첫번째 대담 #1 어떤 내적동기일까. 연극단원에서 막부인이 되기까지 '왕치아즈'의 결정에 담긴 가치는 무엇일까. 항일이라는 국가 이데올로기라고 하기엔 그 농도가 옅다. 적어도 국가적 사명감을 갖고 있는 '광위민' 정도여야 이해되는 행동이다. 그럼 몸과 마음을 내던질만한 '왕치아즈'의 강력한 동기는 무엇일까. #2 울고 있을 줄 알았다. 강간과 같은 잠자리가 끝난후 침대에 혼자 내팽개쳐져있다. 가까이가며 얼굴을 비춘다. 피식 웃는다. 뭐지? #3 웃고 있을 줄 알았다. 잠자리의 대상은 더이상 괴물의 눈을 하고 있는 ‘이선생‘이 아니다. 신뢰를 얻었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임무 완수다. 그런데 절정의 순간에 흐느끼며 운다. 왜지? ##두번째 대담 #1 아버지의 보살핌에 대한 결핍이다. 아버지의 부름을 기다..
#1 '버려짐'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언제나 낯설다. 무뎌진척 지내올 뿐이다. #2 혈연으로 맺어진 줄로만 알았던 가족 구성원은 사실 누군가로부터 모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유리'다. 단지 자신의 '유리'를 무엇으로 감춰왔는지에 따라 다른 인물로 보일 뿐이다. 자신의 손님을 끌어안는 '아키'의 포옹과 해변가에서 고마웠다고 말하는 '하츠에 할머니'의 속삭임과 자신이 죽으면 정원연못에 묻어달라는 '오사무'의 독백과 대교에서 뛰어내린 '쇼타'의 뜀박질과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흘리는 '노부요'의 눈물은 감춰왔던 자기 안의 '유리'를 대면하는 각기 다른 방식일 것이다. #3 우리 모두 '버려짐'에 무뎌진척 하기에 일부러 외면했던 자신의 '유리'를 마주하는 과정이 서툴다. 그런..
#1행성이 눈 앞에 보임에도 진실이 외면당한다.오직 'Look Up'과 'Don't Look Up'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만 남는다. 모든 사람이 주체적으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다.아니, 마주할 능력이 없다.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으름에 잠식당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진실을 담은 '메시지'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메신저'에만 열광한다. #2영화에는 1인 미디어의 힘이 막강하다.반대로 레거시 미디어는 쇠락했다.영화에는 팔로워 수가 많은 사람의 음성이 크다.반대로 전문가의 목소리는 작다. '선호와 취향'이라는 핑계로 '증명과 검증'의 가치를 유린하고 있다.전자는 존중의 영역에 있어야만 하는 가치다.권위까지 부여돼서는 안된다.권위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오직 '증명과 검증'뿐이다. ..
#1'Touch'는 두 뜻을 담는다.'만지다', '감동을 주다'육체적 스킨십과 정서적 스킨십의 공존이 완전한 의미의 'Touch'임을 함축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써준 손편지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손 편지에는 스킨십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썼다 지워서 파인 연필자국이 있다.손바닥에 문대져서 번진 흑연자국도 있다.진심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수록, 숨겼던 말을 담을지 망설이는 마음이 클수록 두 자국은 더 선명해져간다. 쓰는 사람의 고민과 망설임이 편지지와의 육체적 스킨십을 통해 연필 자국과 흑연 자국으로 각인된다.받는 사람은 그 두 자국에 투영된 상대방의 고민과 망설임에 정서적으로 스킨십한다.손 편지는 'Touch'를 실현시킨다. #2영화는 '테오도르'가 손 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