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투(企投) -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본문
#1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오대수의 독백이다.
그러나 '스스로'와 '구원'은 한 문장에 쓰일 수 없다.
전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고 후자는 신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짐승'인 노루와 새는 두 개념을 인지할 수 없다.
이상한 문장이다.
#2
영문도 모른 채 오대수는 제약된 공간으로 피투(彼投)된다.
그곳에서 그는 복수 그 자체인 '몬스터'가 된다.
오로지 복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세상 밖으로 나와도 변함없다.
복수라는 본질이 오대수라는 실존에 앞서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대수는 고통 속에 몸부림친다.
결국 자신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인정한다.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자신의 본질인 복수, 즉 '몬스터'로부터 탈출한다.
그렇게 하얀 눈밭에서 머리가 뒤죽박죽인 채로 오대수라는 실존만 남아있다.
이제는 텅 비어버린 본질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채워나가야 한다.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순간이다.
#3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오대수라는 인물의 끝에서 다시 마주하니 '스스로'와 '구원'이 한 문장에 쓰인다.
마지막 순간 '짐승'인 오대수는 '몬스터'를 버렸다.
그건 복수라는 본질이 아닌 자신의 실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자신을 기투(企投)함으로써 스스로 구원했다.
저 한 문장이 오대수의 서사를 완벽히 표현한다.
이제는 이상한 문장이 아니다.
완전한 문장이다.
'글 > 영화를 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담 : 마주 대하고 말함 - 영화 '色, 戒(색, 계)'를 보고 (0) | 2023.08.04 |
---|---|
유리 - 영화 '万引き家族(어느 가족)'을 보고 (0) | 2023.07.21 |
Post truth - 영화 'Don't Look Up'을 보고 (0) | 2023.06.12 |
Touch - 영화 'Her'을 보고 (0) | 2023.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