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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투(企投) -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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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투(企投) -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TaeTrix 2023. 8. 15. 19:10

 

 


 

 

 

 

 

 

#1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
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오대수의 독백이다.

그러나 '스스로'와 '구원'은 한 문장에 쓰일 수 없다.
전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고 후자는 신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짐승'인 노루와 새는 두 개념을 인지할 수 없다.
이상한 문장이다.

 


#2
영문도 모른 채 오대수는 제약된 공간으로 피투(彼投)된다.

그곳에서 그는 복수 그 자체인 '몬스터'가 된다.

오로지 복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세상 밖으로 나와도 변함없다.

복수라는 본질이 오대수라는 실존에 앞서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대수는 고통 속에 몸부림친다.

결국 자신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인정한다.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자신의 본질인 복수, 즉 '몬스터'로부터 탈출한다.
그렇게 하얀 눈밭에서 머리가 뒤죽박죽인 채로 오대수라는 실존만 남아있다.
이제는 텅 비어버린 본질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채워나가야 한다.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순간이다.

 

 

#3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오대수라는 인물의 끝에서 다시 마주하니 '스스로'와 '구원'이 한 문장에 쓰인다.

마지막 순간 '짐승'인 오대수는 '몬스터'를 버렸다.

그건 복수라는 본질이 아닌 자신의 실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자신을 기투(企投)함으로써 스스로 구원했다.

저 한 문장이 오대수의 서사를 완벽히 표현한다.

이제는 이상한 문장이 아니다.

완전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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