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 영화 'Her'을 보고 본문
#1
'Touch'는 두 뜻을 담는다.
'만지다', '감동을 주다'
육체적 스킨십과 정서적 스킨십의 공존이 완전한 의미의 'Touch'임을 함축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써준 손편지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손 편지에는 스킨십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썼다 지워서 파인 연필자국이 있다.
손바닥에 문대져서 번진 흑연자국도 있다.
진심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수록, 숨겼던 말을 담을지 망설이는 마음이 클수록 두 자국은 더 선명해져간다.
쓰는 사람의 고민과 망설임이 편지지와의 육체적 스킨십을 통해 연필 자국과 흑연 자국으로 각인된다.
받는 사람은 그 두 자국에 투영된 상대방의 고민과 망설임에 정서적으로 스킨십한다.
손 편지는 'Touch'를 실현시킨다.
#2
영화는 '테오도르'가 손 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쓰다'라는 사적 표현보다 '작성하다'라는 공적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테오도르’는 누군가의 손 편지를 대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마저 기계를 통해 다시 대필된다.
당사자의 고민과 망설임은 없다.
파인 자국과 번진 흔적도 없다.
아무 스킨십도 없다.
영화에는 손 편지를 받고 싶어 하지만 직접 쓰지는 않듯, 'Touch'를 바라지만 실현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Touch'는 오로지 '테오도르'가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만 존재한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몸을 부대끼는 장면은 ‘테오도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임을 영화는 색감으로 표현한다.
‘Touch’가 존재하는 유일한 시점이다.
#3
단발성의 만남으로 육체적 스킨십만 갈구하거나 프로그램에 이입하며 정서적 스킨십만 충족한다.
분리될수록 두 스킨십은 공허하다.
그러나 그 공허함을 느낌에도 'Touch'를 향해 나아가지는 않는다.
'Touch'는 대상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상처를 보듬다가 그 상처에 같이 빠져버릴 수도 있다.
두 명분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책임은 족쇄로 느껴진다.
무한한 책임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상처를 보듬는 과정에서 위로하는 방법과 위로받는 방법을 배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간다.
책임은 족쇄가 아니라 성숙게 하는 원동력이다.
책임의 가치를 깨닫고 'Touch'가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그제야 과거에 했던 'Touch’의 경험이 소중했음을 느낀다.
동시에 앞으로의 삶에서 그런 순간이 몇 없음을 직시한다.
'Touch'의 기회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 듯 하다.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처럼 말이다.
'글 > 영화를 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투(企投) -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0) | 2023.08.15 |
---|---|
대담 : 마주 대하고 말함 - 영화 '色, 戒(색, 계)'를 보고 (0) | 2023.08.04 |
유리 - 영화 '万引き家族(어느 가족)'을 보고 (0) | 2023.07.21 |
Post truth - 영화 'Don't Look Up'을 보고 (0) | 2023.06.12 |